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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일을 그만두며

Uing!! 2018. 12. 31.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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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간 함께했던 학원을 떠나게 되었다.

일을 그만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마지막 날까지도 떠나는 것이 아쉬울 만큼 나는 이 학원을 좋아했다.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너무나도 좋은 추억이 많았기에, 2018년이 끝나기 전인 오늘의 블로그을 빌려 글로 남긴다.

 

지난 4월, 우연히 어느 페이스북 그룹에 올라온 글을 통해 학원을 알게 되었다.

마침 알바를 구하고 있던 참이었던 나는 바로 강사로 지원했고, 면접을 통해 학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가 지원할 당시 학원은 오픈도 하기 전이었다.

간판을 보고 도착한 건물 2층에는 아직 책상도 의자도 들어와 있지 않았다.

여기 저기에 공사 중임을 알 수 있는 비닐들이 어질러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은 예뻤다.

독일계 학원임을 알 수 있도록 빨간색과 검은색, 노란색으로 꾸며 놓은 벽과 바닥은 여느 학원 같지 않았다.

2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학원을 기웃거리자 글을 올리셨던 분과 학원 원장님으로 예상되는 분께서 환영하며 나를 맞아 주셨다.

나름대로 아르바이트 면접을 여러 번 보았지만, 도착하자마자 커피 한 잔 드시라며 음료부터 내려 주는 면접은 처음이었다.

2대 1로 면접이 시작되었고, 무슨 일인지 면접관 두 분께서 각자 3분이 넘는 시간동안 자기소개를 하셨다.

그리고 얼떨떨해 있는 내게 자기소개를 부탁하셨다.

말도 안 되게 달달했던 면접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 ‘이렇게 좋은 곳을 만나게 되다니 하늘이 도운 모양이다’ 하고 생각했던 것이 생생하다.

 

면접에 합격한 후 한 달 간의 교육 기간이 있었다.

교육 기간이라고 하지만 기묘하게도 시급은 같았다. 학원이 개업한 이후로는 부트캠프와 수업에 참여했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의 어린 친구들을 이렇게 한 번에 가르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어린 아이들을 대하는 일은 정말이지 낯설었다.

다만,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에서 낯설었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사랑스러웠다.

다들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힘들 거라고 했지만,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라서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 특별히 힘들었던 점은 없었다.

물론 가끔 많이 활발한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하고 나면 귀가길이 피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이 진심으로 미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이들은 어려서 활발하고, 순수하고, 친근하고, 해맑았다. 한 명 한 명이 말 그대로 사랑스러웠다.

내 이름을 묻고 좋아하는 것을 물으며 나를 궁금해하는 아이들이 좋았다.

선생님이 제일 좋다며 화사하게 웃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고,

상품으로 받은 사탕이며 쿠키를 선생님 드시라며 수줍게 건네는 모습은 그 어떤 연예인을 갖다 대어도 모자랄 만큼 예뻤다.

 

지금까지도 내가 아이들을 잘 가르쳤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수업보다도 관계 면에서 특히 그렇다.

어린 아이들은 단순하지만 생각만큼 단순하지는 않았고, 해맑았지만 그만큼 쉽게 상처받았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고 심통이 나 있는 날이면 종일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말을 잘못 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아이들이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항상 마음에 걸렸다.

꾸짖더라도 상처를 주지는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한 번이라도 아이에게 다그치듯이 이야기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다시 다음 수업 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행복했다.

어렵지만 힘들지 않았고, 마음이 쓰였지만 그 마저도 좋았다.

걱정하던 시간까지도 아쉬울 만큼.

 

마지막 날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내가 가르친 학생들을 떠올렸다.

자꾸 ‘쌤!!’을 외치는 탓에 난리통이었지만 머리는 좋아 빨리 이해하고 배우던 아이,

리스트 활용이 재미있다며 나를 당황하게 한 아이,

코딩보다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할 때 표정이 한층 밝아지던 아이,

수줍음을 많이 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지치지 않고 묵묵히 문제를 풀어 나가던 아이,

여자아이들 중에 제일 진도가 빠른 걸 뿌듯해 하던 은서,

퀴즈와 학문을 좋아해 선생님들에게 역학이며 철학을 주제로 재잘재잘 말을 걸던 현균이,

새침한 말투와는 다르게 정이 많아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오던 아이,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금세 활력을 되찾고 말을 걸어 오던 아이,

잘 하면서 괜히 매일 투덜투덜거리고 또 그러면서도 할 건 다 하던 아이,

어린 나이에도 성숙하고 동생들이며 형들까지 잘 챙기던 의젓한 아이,

꼭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만 장난을 치며 다가오던 아이,

늘 생글생글 기분 좋은 웃음으로 분위기를 밝히던 아이,

처음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인 사고력이 발전해서 깜짝 놀랐던 아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자기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내던 아이,

중간에 요일이 바뀌어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웃는 모습이 너무 상큼했던 아이,

선생님을 부르며 분위기를 시끌시끌하게 만들면서도 문제를 풀어 나가던 아이,

조용한 성격에도 팀으로 경쟁을 할 때면 승부욕이 불타오르던 아이.

모든 아이들을 언급할 수는 없어 아쉽지만,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지켜보는 일이 정말 즐거웠다.

 

언젠가 차장님은 학원에서 만났던 선생님들이 모두 학원에서의 일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모두에게 항상 좋은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차장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학원에서의 모든 일들이 내게 있어 아주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학원에 머물렀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말로 학원의 안녕을 기원하고 싶었는데,

말재주가 없어 ‘화이팅!’이라는 한 마디밖에 남기지 못한 것이 영 아쉬울 따름이다.

 

2018년을 내가 사랑했던 일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지을 수 있어서 좋다.

이제는 과거형이 되었지만 앞으로도 한참 동안은 삼전역을 지날 때마다 학원 생각이 나겠지.

정말로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그리고 얘들아, 선생님이 말도 없이 떠나서 미안해.

새해 마무리 잘 짓고, 2019년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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